31/08/2026
"당신의 자기소개서에는 ‘당신’이 있는가"
- AI 시대, 인사담당자의 눈길을 잡는 자기소개서 -
글 | 임정우 | 한국인적자원개발연구원 원장 | 칼럼니스트
며칠 전 취업을 준비하는 한 청년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여러 대기업과 중견기업에 지원했지만 좀처럼 서류전형을 통과하지 못한다고 했다. 학점이나 어학성적도 크게 뒤지지 않았고, 학교생활과 대외활동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그런데 지원하는 곳마다 결과는 비슷했다.
“제가 지방대 출신이라 그런 걸까요?”
오래전 대학 특강을 갔다가 만났던 L씨가 떠올랐다.
그 역시 수십 차례 대기업과 중견기업에 지원했지만 번번이 서류전형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본인은 출신 대학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내민 입사지원서와 자기소개서를 읽어보니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회사 이름만 바꾸면 어디에든 제출할 수 있는, 그저 평범한 자기소개서였다.
왜 이 회사에 지원했는지, 왜 이 직무를 선택했는지, 자신이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특별히 잘못 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수많은 지원서 가운데 굳이 눈여겨봐야 할 이유도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비슷한 지원자를 만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자기소개서가 훨씬 번듯해졌다는 점이다.
자기소개서는 좋아졌는데 ‘지원자’가 보이지 않는다
요즘 취업준비생은 자기소개서를 쓰기가 과거보다 훨씬 편해졌다.
기업 정보와 합격 자기소개서를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생성형 AI에 자신의 경험 몇 가지와 지원 회사, 직무를 입력하면 몇 초 만에 그럴듯한 글이 나온다.
문장도 매끄럽다. 논리도 그럴듯하다. 맞춤법도 웬만해서는 틀리지 않는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인사담당자 입장에서는 지원자를 구별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귀사의 비전에 공감해 지원했습니다.”
“소통과 협업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입사 후 끊임없는 도전과 성장을 통해 회사 발전에 기여하겠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누구나 쓸 수 있는 말이라는 데 있다.
회사 이름만 바꾸면 경쟁사에도 그대로 제출할 수 있다면 아무리 문장이 유려해도 좋은 자기소개서라고 하기 어렵다.
과거에는 성의 없이 대충 쓴 자기소개서가 문제였다면, 지금은 너무 잘 정리돼 있지만 정작 ‘내가’ 보이지 않는 자기소개서가 또 다른 문제가 됐다.
지원자는 AI로 쓰고, 기업도 AI로 본다
채용 현장의 변화는 지원자에게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기업도 AI를 채용 과정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많은 지원서를 분류하고 직무 적합성을 살펴보는 데 AI를 활용하는 기업이 늘고 있으며, 일부 채용 현장에서는 문장 유사도나 생성형 AI로 작성됐을 가능성을 분석하는 도구도 사용한다.
그렇다고 AI의 도움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탈락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기업마다 활용 방식과 기준이 다르고, AI가 작성한 글인지 완벽하게 가려내는 것 역시 쉽지 않다.
결국 기업이 확인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이 글에 담긴 경험과 생각이 정말 지원자의 것인가.
자기소개서에는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갈등을 해결했다’고 적혀 있는데 면접에서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데이터를 분석해 성과를 개선했다’고 써놓고 정작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분석했는지 답하지 못하기도 한다.
글은 훌륭한데 정작 그 글의 주인공이 자기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AI를 활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기업을 조사하고 자료를 정리하거나 글의 구조를 잡고, 자신이 쓴 문장을 다듬는 데 활용할 수도 있다.
다만 선은 분명해야 한다.
AI를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AI에게 나를 대신 쓰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기소개서는 ‘나’라는 브랜드를 보여주는 글이다
신입사원에게 자기소개서는 단순히 자신을 소개하는 글이 아니다.
아직 직장 경력이 없는 지원자가 나는 어떤 사람이며, 왜 이 직무에 적합한지를 글로 보여주는 첫 번째 기회다.
누구에게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성실할 수도 있고 책임감이 강할 수도 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거나 꼼꼼할 수도 있고, 한번 시작한 일을 끝까지 해내는 끈기가 강점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 장점을 모두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지원하는 직무에서 어떤 역량을 필요로 하는지 파악하고, 자신이 가진 장점 가운데 그 직무와 맞닿아 있는 부분을 골라 보여주는 것이다.
영업직에 지원한다면 사람을 설득하고 관계를 만들어간 경험이 강점이 될 수 있다. 재무나 회계 직무라면 정확성과 숫자를 다루는 능력, 작은 오류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꼼꼼함이 더 설득력 있을 수 있다.
마케팅이라면 단순히 “아이디어가 많다”고 쓰기보다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무언가를 바꾸어본 경험을 보여주는 편이 낫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장점의 개수가 아니다.
내가 가진 여러 장점 가운데 무엇이 지원 직무에 필요한지를 골라내고, 그것을 자신의 경험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자기소개서에도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수많은 지원서를 검토하는 인사담당자가 글을 읽다가
“이 지원자는 어떤 사람일까.”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한다.
자기소개서는 결국 ‘나’라는 브랜드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첫 관문이다.
‘왜 우리 회사인가’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지원서를 검토할 때 필자가 중요하게 보는 것 가운데 하나가 지원 동기다.
그런데 많은 지원자가 지원 동기를 회사 칭찬으로 대신한다.
‘업계를 선도하는 기업이어서’,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이어서’, ‘혁신적인 기업문화에 매력을 느껴서’ 지원했다는 식이다.
기업이 궁금한 것은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수많은 회사 가운데 왜 우리 회사인지, 수많은 직무 가운데 왜 이 일을 하려는지가 궁금하다.
좋은 지원 동기는 회사에 대한 이해와 자신의 경험이 만나는 지점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 마케팅 직무에 지원한다면 “마케팅에 관심이 많다”는 말로 끝나서는 안 된다. 어떤 계기로 관심을 갖게 됐고, 그동안 무엇을 해봤으며, 자신의 어떤 강점이 해당 기업의 업무와 연결되는지를 보여줘야 한다.
지원 동기를 읽은 인사담당자가 **“그래서 이 사람이 우리 회사에 지원했구나”**라고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스펙보다 중요한 것은 경험을 설명하는 힘이다
과거 채용에서는 학교와 학점, 어학점수, 자격증 같은 이른바 ‘스펙’이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다.
물론 지금도 기본적인 자격요건은 중요하다.
하지만 기업은 갈수록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뿐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려고 한다.
그래서 경험을 어떻게 설명하느냐가 중요하다.
“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여기서 끝나면 특별할 것이 없다.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그 안에서 자신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무엇을 했고 결과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설명해야 그 사람의 역량이 보인다.
화려한 경험일 필요도 없다.
인턴, 아르바이트, 동아리, 수업 프로젝트, 봉사활동에서도 직무와 연결할 수 있는 경험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경험의 크기가 아니다.
그 경험 속에서 내가 무엇을 했고, 무엇을 배웠는가다.
신입 채용에서는 더욱 그렇다.
경력직처럼 과거 직장에서 만든 성과를 보여주기 어렵기 때문에 작은 경험이라도 그 안에서 자신이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소개서는 면접의 예고편이다
지원자들이 자주 놓치는 것이 하나 있다.
자기소개서를 서류전형을 통과하기 위한 문서로만 생각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좋은 자기소개서는 면접까지 생각하며 써야 한다.
면접관은 자기소개서에 적힌 내용을 토대로 질문한다.
그렇다면 거꾸로 생각해볼 수 있다.
면접에서 내가 가장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경험을 자기소개서에 담는 것이다.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했던 경험, 성과를 냈던 경험, 실패했지만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배운 경험을 적절히 담으면 면접에서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강점을 보여줄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이 받고 싶은 질문을 자기소개서에 어느 정도 심어놓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다만 과장해서는 안 된다.
한 줄을 적더라도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면접관이 이 부분을 물어보면 나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설명할 수 없다면 쓰지 않는 편이 낫다.
자기소개서는 서류전형에서 끝나는 문서가 아니다.
면접장에서 다시 펼쳐질 나에 대한 첫 번째 기록이다.
수십 장을 넣는다고 합격 가능성이 높아질까
오래전 필자가 만났던 L씨는 자신이 지방대 출신이라 계속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지원서를 함께 살펴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문제는 출신 대학 이전에 있었다.
어느 회사에 왜 지원하는지 보이지 않았고, 어떤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도 드러나지 않았다.
회사 이름만 바꿔 비슷한 자기소개서를 반복해서 제출하다 보니 지원 횟수만 늘었을 뿐 경쟁력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은 당시보다 지원서를 만드는 일이 훨씬 쉬워졌다.
기업 정보도 금세 찾을 수 있고 AI의 도움을 받아 문장도 빠르게 다듬을 수 있다.
하지만 지원하기 쉬워졌다고 합격까지 쉬워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비슷하게 잘 쓴 지원서가 많아진 만큼 자신의 경험과 직무 적합성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보여주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수십 군데에 비슷한 지원서를 보내는 것보다 정말 가고 싶은 회사를 제대로 분석하고, 그 회사와 직무에 맞춰 자신의 경험 가운데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고민하는 편이 낫다.
지원서를 제출하기 전 마지막으로 세 가지를 물어보자.
왜 이 회사인가.
왜 이 직무인가.
그리고 왜 나인가.
첫 번째 질문은 지원 동기를 묻는다.
두 번째 질문은 직무에 대한 이해를 묻는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은 다른 지원자가 아니라 왜 나를 뽑아야 하는가를 묻는다.
이 세 질문에 자신의 경험으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AI가 아무리 좋은 문장을 만들어주는 시대가 와도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까지 대신 만들어줄 수는 없다.
기업이 뽑는 것은 잘 쓴 자기소개서가 아니다. 그 자기소개서 뒤에 있는 사람이다.
"당신의 자기소개서에는 ‘당신’이 있는가" - AI 시대, 인사담당자의 눈길을 잡는 자기소개서...